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Definitely Maybe (문단 편집) == 특징 == 영국 내에서 270만 장 이상 팔렸으며, 빌보드 앨범 차트 50위[* [[빌보드 200]] 최고 58위, 차트인 20주.] 안에도 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100만 장 이상 팔리며 [[(What's The Story) Morning Glory?|다음 앨범]]의 미국에서의 대히트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. 전세계 판매량은 1500만 장 정도. 2023년 8월 둘째 주 기준 500주 이상 UK차트에 머물러 있다. 다음 앨범인 [[(What's The Story) Morning Glory?]]가 [[비틀즈]]를 비롯한 고전 로큰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, 이 앨범은 [[매드체스터]]의 영향이 아주 강하게 반영된 음반이다. 사운드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강하여, 보통 인디 록, 펑크 록으로 분류된다. '[[Supersonic(오아시스)|Supersonic]]', '[[Shakermaker]]', '[[Live Forever]]' 등의 싱글이 연달아 흥행한 다음 이 앨범이 발매되었는데, 1994년 발매 당시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데뷔앨범이라는 기록을 얻었으며, 후에 이 기록은 만 18살에 데뷔한 괴물 신인 [[악틱 몽키즈]]의 2006년 데뷔 앨범 [[Whatever People Say I Am, That's What I'm Not]]에 의해 깨지게 된다. 90년대 초반 건설회사에서 노가다를 뛰며 일하던 [[노엘 갤러거]]가 파이프에 발을 깔려 다치면서, 창고에서 덜 험한 일을 하는 동안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는데, 그 정수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있다. 그래서 노엘은 그 창고를 'Hit Hut(대박창고)' 라고 불렀다. 앨범을 녹음하기 전에 스코틀랜드의 어느 클럽에서 오프닝 공연을 하던 중 마침 그곳에 와서 공연을 보고 있었던 [[크리에이션 레코드|크리에이션]] 사장인 앨런 맥기가 그들을 맘에 들어 했고 결국 나중에 앨범 계약까지 체결을 하였다. 그는 이 앨범을 녹음하는 중에 갤러거 형제들의 특이한 성격에 의해 빡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으나, 다행히 [[마이 블러디 밸런타인]]이라는 '''더 특이하던 독종'''을 3년 간이나 상대한 터라 단련되어 있었다.[* 이 밴드의 리더인 케빈 실즈는 사운드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괴팍한 완벽주의자인데, 극단적인 예시로 이 양반은 기타 이펙터만 수십 개를 연결해대면서 수록곡 '''인트로'''를 만드는 데만 믹싱을 수백 번을 갈아엎는 등 앨범 녹음만큼은 초스피드였던 오아시스와는 정반대로 돈 먹는 하마 그 자체였다. 결국 마블발은 앨범을 만드는 2년간 크리에이션의 재정 상태를 '''혼자서 개박살내놓고'''(다만 케빈 쉴즈는 이 앨범이 음반 제작사를 파산 직전으로 몰고갔다는 썰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) 엄청난 돈을 써서 결국 쫓겨나기에 이른다(...) 물론 그렇게 해서 나온 앨범인 [[Loveless]]는 '''9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'''라는 찬사를 받긴 했다만. --[[OST는 좋았다|음악성은 좋았다]]고 두둔을 해주기엔 [[가성비|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]]--] 갤러거 형제도 앨런 맥기가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들한테 기회를 준 것에 항상 존경심을 표한다. CD 부클릿엔 가사가 적혀있지 않지만 [[LP]]에는 적혀있다. LP판에는 Sad Song이라는 트랙 하나가 더 들어있는데, CD와 달리 LP에서는 트랙 하나짜리 자리가 비는 바람에 땜빵용으로 노엘이 급조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. 일본판에는 Sad Song과 Cloudburst가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. 앨범 커버의 와인은 블랙커런트 쥬스라 한다. 또한 노엘이 들고 있는 기타는 에피폰 EJ-200, 창가 쪽 기타는 에피폰 리비에라이다. 2014년 5월 19일, 앨범 발매 20주년 기념으로 리마스터 되어 재발매가 이루어졌다. 3LP+3CD박스셋, 3CD디지팩, 1CD쥬얼판으로 나뉘어 발매되었다. 그리고 하이 레졸루션 오디오로도 공개 되었는데 스펙은 24Bit/44.1kHz로 되어 있으며 딜럭스 판에는 상기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. 처음 작업 때는 라이브의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녹음을 시도했다. 그러나 막상 작업 때 원하던 사운드가 나오지 않았고, 미진한 결과물이 이어졌다. 멤버들도 지쳐 ‘그냥 이대로 대충하고 2집 부터는 제대로 만들자’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.[* 사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한데, 애초에 오아시스라는 밴드에게 앨범을 프로듀싱 할 수 있을만한 음악적 역량이 전무했기 때문이다. 음반 제작 경험은 커녕 이당시 오아시스의 경력이라곤 연습실에서 자기들이 쓴 곡을 합주한 것과 작은 클럽에서 공연한 것이 전부였는데 높은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들이 음악의 디테일에 관여하고 음향 장비들을 만져가며 사운드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. 모든 노래를 작곡하였고 오아시스 이전에 밴드 로디 경험까지 있었던 노엘조차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타와 앰프에 대해서도 지식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최고점을 찍었던 넵워스 공연을 오른 순간까지도 무대에서 기타 이펙터라고는 고작 딜레이 페달 하나만을 썼을 정도로 심도있는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다.] 결국 사운드를 잡기 위해 프로듀서 마크 코일[* 오아시스의 사운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]과 같이 쏘밀즈 스튜디오에서 다시 녹음 작업을 하였다. 한 곡당 3번 연주하고 녹음해서 제작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마크 코일은 이대로면 3일이면 되겠다고 짐작했으나 믹싱 작업을 해보니 역시나 사운드가 별로였다고 한다. (...) 결국 마크 코일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포기한 뒤, 어쩔 수 없이 녹음된 테이프를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앨런 맥기에게 가져다 들려줬더니 맥기 역시 실망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.[* 당시 리암은 밴드를 때려치고 싶을 충동을 격렬하게 느꼈다고 한다.] 결국 이 폐기물에 가까운 마스터 테이프는 프로듀서 오웬 모리스에게 넘어갔는데[* [[조니 마]]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인물이다. 달리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에게 맡겨졌다고 한다.], 오웬 모리스가 딱 1곡을 임시로 믹싱해서 들려줬더니 노엘은 엄청난 사운드에 감동하며 "이 사운드면 되겠어!" 하며 그제서야 만족했다. 사실 이 비결은 새로 도입한 믹싱 장비가 노이즈 없이 음압을 두배로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. [* 그 덕분에 많은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으로 음압을 올리는 대 [[라우드니스 워|음압 전쟁]]의 시대가 도래했다.] 덕분에 우여곡절을 거치며 모든 트랙을 믹싱한 후 그제서야 1집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고 한다. 참고로 이런 사운드에 대한 고심은 결국 3집 앨범 [[Be Here Now]]에서 재발하였고 오웬 모리스마져 손들게 만들었다. (...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